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이비 붐 세대 (문단 편집) == 일본의 단카이 세대 == {{{+1 [ruby(団,ruby=だん)][ruby(塊,ruby=かい)]の[ruby(世,ruby=せ)][ruby(代,ruby=だい)]}}} 단카이는 '''덩어리'''라는 뜻으로, 일본에선 단카이 세대라는 명칭을 주로 쓰고 그 외에는 1차 베이비붐 세대라 하는데 종전 후인 [[1947년]]부터 [[1949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1947년에 267만 8792명, [[1948년]]에 268만 1624명, 1949년에 269만 6638명이 태어나 3년 동안 806만명이 태어났다. 다만 타 국가와는 다르게 베이비붐은 3년 정도로 짧게 끝났고 좀 넓게 봐도 [[1953년]]생부터는 출생자수가 200만을 넘기지 못하기 때문에[* 이후에 [[1971년]]부터 [[1974년]]생까지 출생아수가 다시 200만을 넘기게 되었다.(이 시기에 태어난 세대들을 2차 베이비부머, 이전의 단카이 세대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단카이 주니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후에는 출생아수는 대체적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고 [[2000년대]] 중반에 출산율이 저점을 찍은 이후에도 이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이후로는 베이비붐 세대에 끼어들지 못한다.[* [[1949년]]부터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매우 단시일내에 떨어졌다. [[1950년대]] 후반 들면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는 [[헝가리]] 정도 수준일 정도다.] 한국이나 미국과 비교하면 전체 인구구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한다. 단카이 이후 세대인 시라케 세대 중 1950년대 후반 이전에 태어난 세대를 2차 베이비붐 세대로 묶기도 한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에서 오래 애니메이터, 연출가 등으로 몸담던 야마구치 야스오의 저서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따르면 이들은 어릴 적부터 [[TV]] 보급의 혜택을 겪어 <[[철완 아톰]]> 같은 TV 애니메이션을 즐겼고, 대학 진학 시에는 각목을 들고 헬멧을 쓴 채 정치투쟁에 나서며 <아사히 저널> 류의 진보 시사잡지들을 많이 읽었고, 만화도 짬내서 읽었기에 '한 손엔 아사히 저널, 다른 한 손에 소년 매거진'이란 말이 붙었으며, 치바 테츠야와 시라토 산페이, 츠게 요시하루 등 만화가들도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내일의 죠]]>, <나사식>, <카무이전> 같은 아웃사이더풍 작품들을 창작해냈다. [[586세대]]와 비슷한 점이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사회운동의 동력으로 1940년대생 단카이 세대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다만 대학 진학률이 15% 수준이라 모든 단카이 세대가 [[전공투]] 등의 운동권에 동조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사실 이건 586 세대도 어느정도 마찬가지인 게 [[1980년대]]에는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30%는 커녕 10% 후반~20%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수준이라서 대학에 간 사람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로 지방이나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고등학교가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었다. 가난해서 대학교를 못가는 사람이 많았던 만큼 고등학생만 돼도 공부를 하는 학생 취급받았고, 가난해서 일반계를 못가고 상고, 공고에 가는 소년들도 많았다. 그래서 이들은 재학중에도 사상공부를 하여 목소리를 내기도 했고, 이들중 일부는 고등학교 졸업후에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대학생들과 교류하며 사상공부를 하면서 좌파 성향을 갖게된다. 이들이 실질적인 대한민국 1세대 [[노동조합]]운동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유권자가 된 이후에 자민당의 득표율이 상당히 떨어졌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커다란 정치적인 변혁이 일어났던것도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70년대]]까지 지방선거에서 혁신지자체장이 상당히 탄생하기도 했고,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이 선거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일이 생겼지만 야당들이 (따로 놀아서 정권이 교체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그나마 당시 유일하게 정권교체 기회가 있었던 [[1980년]] 중참 동시선거도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총리]] 사망으로 날려먹었다. 오히라 총리의 사망으로 자민당 동정표가 많아졌기 때문.] [[비권]]에 해당하는 논포리(ノンポリ,Non-Political)도 많았고. 다만 다른 세대에 비해 [[리버럴]]한 경향이 비교적 강하기는 하며 [[아사히 신문]]을 많이 읽는다.[* 예를 들자면 2014년 도쿄지사 선거의 경우 좌파의 득표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대였다. [[https://s3.amazonaws.com/images.traversist.com/20140210001/asahi.png|#]]] [[1980년대]]에 회사의 [[중간관리직]]에 오를 중장년 시점에 이들은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를 겪었다. 안정적인 경제력을 갖춘 나이대에 버블까지 겹쳐서 소비는 실컷 해보고 금융자산까지 쌓아 놓은 세대이고 장년을 지나 노년으로 가면서 버블경제의 종결과 사회의 우경화를 바라보게 되는 세대도 되었다. 2020년 들어 단카이 세대는 모두 70대에 들어서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